일상/일기

 

전역한지 벌써 3주가 조금 넘었다.

그저께는 오랜만에 군대 선임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서 의정부에 갔다.

 

의정부에는 목스녹스라는 편집샵이 있다.(페이스북에 홍보가 떠서 봤음..) 편집샵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의정부 구경도 할 겸 겸사겸사 갔다.

목스녹스는 입구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지하였는데 문이 투명하지 않아서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고

왠지 내가 들어가면 안될 곳 같았다. 계단에서 망설이던 중에 한 커플이 문을 열고 나왔고

더이상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냥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직접 일본에서 옷을 구해와서 판매하는 사람 같은데 열정이 대단해보이셨다.(그리고 엄청 쌔보이셨다..)

난 중고딩들 사이에서나 유행하는 르꼬끄 스포르티브 패딩을 입고 들어갔는데 내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분위기가 예뻤다.

옷들에는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았다.

편하게 구경하고 입어보라고 하셨지만, 왠지 눈치가 보여서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가 예뻐 보이는 어느 옷을 골라서 가격을 물어봤는데(셔츠랑 조끼 세트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브랜드 이름을 이야기 하시면서 32만 5천원이라고 하셨다.

그냥.. 나가고 싶은 가격이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어서 그냥 나왔다.

 

목스녹스를 좀 더 오래 구경할 줄 알고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왔는데

가게를 일찍 나와버려서 약속시간까지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약속장소인 부야쓰곱창 근처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나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던 중에 전화가 왔고 다시 곱창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곱창에 소주를 마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호의적이다.

소주를 둘이서 일곱병을 마셨는데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마음에 있는 말들을 몇 개 해버렸다.

요즘 너무 놀고만 있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거나

군생활을 하며 속상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6시 30분부터 마셨는데 소주 일곱병을 마시고 나니 11시 30분이 돼있었다.

별 얘기도 안 했는데 시간이 참 빠르다.

이 친구는 자기가 술을 엄청 잘 마신다고 했는데

왠지 나보다 컨디션이 더 안좋아보였다.

엄마한테 온 페이스북 메세지를 봤더니 막차가 끊겼으니까 외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라는 것이었다.

근데 외할머니 집은 왠지 불편하다.

그래서 이 친구네 숙소로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러 의정부역으로 걸어가다보니 패딩 모자가 없어져있었다.

당황해서 왔던 길을 한번 되돌아가야 했다. 길거리에 떨어져있는 패딩 모자를 주워서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친구는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토를 했다.

토를 하거나 말거나 난 너무 졸려서 그냥 누워 자버렸다.

 

자는 중에 목이 말라서 일어났는데 물통만 있고 냉장고라던가 정수기라던가 물이 있을만한 것이 없었다.

알고보니 간부 아파트는 부대마냥 정수기가 복도에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물통을 들고 현관을 나왔다.

물을 마시고 들어가려는데 현관문들이 다 똑같이 생겨서 내가 어디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이라도 두들겨 보려고 해도 혹시 다른사람 집일까봐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체력단련실에 있는 요가매트에서 잠을 잤다.

한 시간 정도 잤나?.. 너무 추웠다.

그래서 다시 문이라도 두들겨 보려고 복도에 있는 문들을 쳐다봤는데

잘 보니 문에 조그맣게 누가 살고있는 집인지 이름이 적혀져있었다.

 

그래서 겨우 내가 들어가야 할 곳을 찾아 벨을 누르고 들어갔다.

원래는 그 친구가 자는 사이에 첫 차를 타고 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귀찮았다.

결국은 그 친구가 출근하고 아침 11시가 되어서야 일어나서 집을 왔다.

그 친구는 술을 그렇게 마셔본 적이 처음이라며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난 숙취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

 

그런데 집을 가려고 보니 내가 입고 온 패딩의 모자가 다시 사라져 있었다.

왠지 택시에 두고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친구한테 전화를 해보았다.

택시에서 받은 영수증에는 택시기사의 전화번호와 차량번호가 적혀있기 때문이다.

근데 하필 현금으로 결제를 했다고 한다.

 

결국 나는 의정부의 택시회사들과 유실물 센터 그리고 경찰청 유실물 센터까지 찾아본 뒤에

의정부 시청으로 전화를 해서 의정부의 택시회사들에 공문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공문은 내려졌지만, 안내원은 찾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때까지는 모자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르꼬끄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보고 나서야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패딩에 달려있는 모자는 따로 줄 수도 없고, 구매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찾아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패딩을 하나 더 사는 수 밖에 없다니

그 패딩의 가격은 39만 9천원이다.

모자를 잘 뜯어지게 만들어 놓고 잃어버린 것은 내 탓이라고 한다.

형편없는 브랜드이다.

 

동생한테 페이스북 메세지로 '패딩 하나 살래?'라며 메세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나오는데 저 멀리 서리가 낀 검정 비닐봉지 같은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게 패딩 모자였다.

길 한복판에 놓여져 있는 것을 아무도 치우지 않은 게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동생에게 '아니다.'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이 모자는 잃어버린 적도 없던 척을 해야겠다.

 

엄마한테 집에 곧 간다고 전화를 했는데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아무것도 사먹지 않았다.

빽다방에서 깔라만시에이드 라는 음료수만 하나 사먹었다.

배는 고파죽겠는데 지하철은 왜이리 안 오는지.. 의정부에서 회룡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항상 그런 것 같다.

먹골에 도착하자마자 페이스북 메세지를 확인해보니 미용실에 손님이 있어서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없다고 와있었다.

그래서 이삭토스트와 신전떡볶이를 사서 집으로 갔다.

집에선 동생이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동생 둘이랑 사이좋게 삼겹살과 토스트 떡볶이를 나눠먹었다. 맛있었다.

소주를 세병 넘게 마셨는데도 멀쩡했다. 남들같았으면 다음 날은 하루종일 잠만 잤을텐데

난 왠지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은 전역한 뒤로 항상 느끼고 있는데 원인은 알 수가 없다.

내 친구중 한 명은 내가 일을 하고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내가 만든 저녁은 '묵은지등갈비찜'이었다.

오후 두시부터 등갈비 핏물을 빼고, 세시간동안 물을 세 번 갈았다.

20분 정도 끓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늘 7개와 생강 한 쪽, 대파 두 쪽과 양파 1개, 그리고 된장 1큰술이랑 등갈비를 같이 넣어서

한시간 반 정도 끓였다.

그 다음엔 묵은지 1/4포기를 넣어서 30분 정도 더 끓였고

소금 1/4스푼, 설탕 반 스푼, 간장 한 스푼, 고춧가루 두 스푼, 다진 마늘 한 스푼을 넣어서 간을 해줬다.

그대로 30분 정도 끓여서 먹었는데, 김치찌개 같은 맛이 났다.

'일상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날  (0) 2018.10.30
나만의 공간  (0) 2018.04.30
산책시간  (0) 2017.08.13
2017년 5월 23일  (0) 2017.05.24
5월 22일 일기  (0) 2017.05.24